2024년 12월 19일 목요일
살아 낸다는 것
2022년 3월 4일 금요일
죄의식의 유발
1.
https://youtu.be/_RNjAUMEusg?t=223
위 영상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키워드보다는 죄의식, 죄책감의 유발에 주목했다.
2.
본인 나름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입각하여 아주 선하고 이타적 기준과 토대 위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지적하고 요구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
이 인식을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것인가.
3.
심지어 백가지나 마음에 안드는데 그중 두세개만 요구하는거니 오히려 너그럽고 관대하고 이해심이 많다고 자기평가를 하는 상황이라면 고심이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4.
자신의 가치와 의도 모두 선하니 그거에 반대하는것은 자연스레 '죄'성을 띠어야만 한다. 그래서 답을 기독교적 인식 중 죄의식이라는 요소에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 (와 '용서') 라는 것이 일상어적으로 이해될 수 없고
'옵헤일레마' (그리고 '압히헤미') 즉 '빚' 의 개념이 더 강하다는 것을.
5.
그래, 난 빚을 지고 있을지언정 (일상어적 의미에서)죄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냥 취향에 안 맞는 행동을 하였다, 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립적 표현이다.
6.
자꾸 내가 잘못을 저지르고 난 올바르지 못하고 좋지 못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하니반발심과 함께 억울함, 무력감, 허탈함이 찾아오고 나의 잘못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되니 결국 나 스스로를 죄의식 속으로 몰아 넣고 회개를 통해 이 고통에서 구원 받고자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난 그렇게 죄인이 되었고 속죄를 구한다.
그래도 맘이 편하지 않다. 편할리가 없다.
나의 죄는 '옵헤일레마'적 죄가 아니기에...
내가 구한 용서도 '압히헤미'일 수 없기에...
2018년 7월 3일 화요일
과거를 끝냄
1. 앞으로를 말한다
- 성경에서도 구원받기전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더 초점
- 우리의 구원은 과거를 어ᄄᅠᇂ게 처리하는가에 근거하지 않는다. 회개는 필요하나 그 회개가 구원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구원,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는 완전한 사하심을 얻고 구원을 얻었다.
2. 이전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 우상 금지는 십계명의 첫 번째 금령어
- 부당한 물건들, 사치품들을 없애거나 팔아서 가난자를 도움
3. 과거 남에게 준 피해를 배상할 것(물질적인 손해)
- 삭개오의 이야기. 네 배가 갚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이 임한 결과. 네 배를 갚아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네 배나 갚은 것
- 솔직히 자백하고 간증할 것 /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경험있는 형제가 돕게하라
- 살인 또한 과거의 일. 성경에서는 과거의 죄를 묻거나 어떻게 해야 한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4. 미결된 일에 대한 처리
- 일단 먼저 주를 따르고 미결된 다른 일든은 그냥 내버려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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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우상을 멀리하는 것과 타인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어떻게 양립 가능할 것인가.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유일신 종교 안에서는 결코 타 종교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인가
2018년 5월 23일 수요일
다짐
신념이 한 개인에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로 확장이 되려할때 그것을 수용하거나 따라야 하는 자의 고통의 무게가 이토록 크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고통은 왜 나에게만 해당되는걸까
왜 나만 이해하고 받아드리고 노력해야하는 건가 하는 원망을 해 본다.
(물론 나를 채찍질 하는 그들의 고통도 있겠지만)
나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그 신념을 관철시키려는 폭력 앞에서 난 결국 가슴 한편으로 체념 하고 만다.
그 폭력의 본질은 나에 대한 사랑이겠지만 나에게는 상처다.
조금만 너그럽고 유연하게, 세련되게 권하고 포용해준다면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을터인데.
포용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그 딱딱함이 날 더 밀어낸다.
내가 느리고... 길을 조금 헤매기도 하고.... 그래서 답답하고 걱정되겠지만,
그들이 바라는 목적지가 나의 목적지임을 알고
나의 묵묵하고 단단한 진심의 걸음을 바라보며
한없이 날 믿고 응원해주는 자가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픈 오늘이다.
2.
내가 가려는 길을 가는 것과 자식된 도리를 하는 것이 상충하게 되는 요소가 있었지만, 내가 더 현명했더라면 함께 가져 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현명하지 못했고 게을렀고 오만했다.
나의 잘못으로 생긴 당신의 상처와 오해를 이제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 돌릴 수가 없다. 그래서 괴롭다.
그리고 참 섭섭하다. 당신의 상처와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나의 처절한 노력과 눈물나는 고통이 또 다른 세상에서는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구나.
어떻게 그렇게들 자기 입장만 생각을 할까.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하다.
그 어떤 것도 나의 행복을 막을 수 없다.
내 목적지가 분명하니, 느리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언젠가 그분께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나를 꼭 안아 위로 해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내가 걸어가는 길 때문에 당신께서 상처받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처하며 당신들을 존중하고 섬기는 그런 아들이 될거라고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나의 걸음이 불안하고 충분하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은 나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본질임을 기억하고 슬퍼하지 않고 인내할거라고.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 지치지 않게 나만의 속도로 묵묵하게 걸어갈 것이다.
2016년 6월 23일 목요일
하하하
시간이 없어!!
.
.
.
잘 살고 있는거다.
2016년 6월 13일 월요일
널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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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나에게 술자리 제안
내가 많이 안쓰러웠던걸까 :-)
위로 받았던 오늘
병원 일 하면서 참 좋은 친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