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6일 화요일

서양미술사 10 : 촉각에서 시각으로 - 바로크

중세에는 현실의 재현에 무관심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다. 약 300년간의 르네상스는 바뀐 예술의지에 따라갈 수 있겠끔 능력을 개발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였기에 자신들의 작업을 일종의 과학으로 생각하였지만, 현실을 재현하는 과학적 방법을 만들어 내는데에는 철저하게 창의력을 바탕에 두는 예술가적 면모를 지켜나갔다.

16세기(1500년대)가 되면 원근법이 다 발명이 되고 인체비례도 거의 완성이 되었다. 가령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 상을 보면 인체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그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없을 듯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렇게 르네상스 시대에 모든 과업이 끝나면서, 그 후에는 더이상 새롭게 창조할 것이 없는 매너리즘(마니에리슴)의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 매너리즘(마니에리슴) 시대
: 르네상스에 완성된 고전주의 예술의 뒤를 이어 받아, 거의 1520년 경부터 17세기 첫머리에 걸쳐서 주로 회화를 중심으로 유럽 전체를 풍미한 예술양식. 20세기 초 무렵까지는 고전주의 예술을 기교적으로 모방하기만 한 쇠퇴기의 예술양식이라는 부정적인 견해가 강했지만, 제1차대전 전후부터 성기 르네상스 양식과는 다른 별개의 독립된 양식으로서 다시 그 의의가 재평가 되었다.



모든 과업이 끝난 후이기 때문에 매너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형태의 아름다움 및 기교를 추구하였고 그로인해 형태가 객관적 비례에서 제작적 비례에 가까워져갔고 감각적인 것이 훨씬 더 강조되면서 우아한 느낌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16세기까지는 여전히 종교가 중심인 시대였는데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뉴턴)이 발달하고 이성중심의 철학(데카르트)이 등장하게 된다.

르네상스 예술은 고전주의로 발전을 하게 되는데, 고전주의는 르네상스예술과 이념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고전주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제작방식 및 규칙들을 규범으로 만들어서 강제한다. 그리고 아카데미라는 예술단체가 성립되면서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취향이 정해져 있었었기에 예술가들의 창작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지켜야하는 규칙들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규칙의 체계를 캐논이라 한다.
- 고대의 캐논 : 인체를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이상적인 비례
- 고전주의 캐논 : 예술작품의 주제, 제제, 기법, 묘사대상 등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지켜야 할 규칙의 체계


17세기의 프랑스에서는 고전주의(푸생)가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밖에서는 바로크 예술이 태어나고 있었다. 벨기에의 루벤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이탈리아의 카라바지오 등이 바로크 회화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 푸생(Nicolas Poussin, 1594 ~ 1665)
: 17세기 프랑스 최대의 화가이며 프랑스 고전주의의 대표적 화가. 신화·고대사·성서 등에서 제재를 골라 로마와 상상의 고대 풍경 속에 균형과 비례가 정확한 고전적 인물을 등장시킨 독창적인 작품을 그렸다. 장대하고 세련된 정연한 화면구성과 화면의 정취는 프랑스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바로크 예술은 고전주의 예술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이다. 지나치게 이성중심인데 반해 바로크 예술은 관능적이고 격정적이고 육체적인 느낌을 준다.

인간을 묘사할 때 고전주의는 인간의 몸이 신에 가까워지고 육체가 정신성을 추구하지만 바로크예술은 아프면 매우 아프게 묘사가 되거나 잔혹하기도, 야하고 관능적이기도, 운동성이 살아있는 등 인간의 몸이 자신을 주장한다.



* 하인리히 뵐플린(1864~1945, 스위스 미술사학자)
: 1915년에 출간된 『Kunstgeschichtliche Grundbegriffe(미술사의 기초 개념)』은 하인리히 뵐플린의 주저로서 십육 세기에서 십칠 세기 미술사를 르네상스(고전주의)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대비에 특징 부여. 고전주의와 바로크의 대비를 표현 방식 선 상태/평면/폐쇄된 형식/다수성/명료성에 의거하여 설명하였다.

선 상태 – 회화 상태
평면 - 심오(깊이)
폐쇄된 형식 – 열린 형식
다수성 - 통일성
명료성 – 불명료성

대체로 고전주의는 명료한 모양이 있고 각부가 독립하면서 전체에 질서를 부여 가능하다. 바로크는 변화/운동을 볼 수 있어 각부는 전체 주제에 종속하며, 이런 표현 방식 변천을 십육 세기에서 십칠 세기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 사상에서도 볼 현상으로서 파악하였다.



Descent from the Cross - Peter Paul Rubens, 1612~1614

루벤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다음에 십자가에서 떼어내는 장면으로 만화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교회안에서 죽어가면서 보던 작품이다. 바로크회화는 격정적이고 역동적이다. 구도를 보면 대각선 구도를 이용하고 있어 역동적인 느낌을 강화하고 있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년 6월 28일~1640년 5월 30일)
: 독일 태생으로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이다. 루벤스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역동성, 강한 색감, 그리고 관능미를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Primavera - Sandro Botticelli, 1482

르네상스의 대표화가 보티첼리의 그림을 보면 마치 조각상을 그림으로 옮겨 놓은듯 하다.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년 3월 1일 ~ 1510년 5월 17일)
: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피(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이지만, 보티첼리(=작은 술통)라는 이름으로 더 잘알려져 있다. 메디치 가문과 그 가문의 추종자들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그의 초상화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후기 작품은 고딕 양식을 재수용하면서 감정적으로 강한 표현을 드러내는 특징을 지녔다. 그의 회화가 지니고 있는 몇 가지 요소를 19세기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이 재수용했고, 유겐트슈틸도 선과 장식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그로부터 몇 가지를 차용하기도 했다.


The Three Graces(삼미신) - 루벤스, 1639

다시 루벤스의 그림이다. 보티첼리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터치가 더 거칠고 훨씬 더 평면적인 느낌이 든다. 어떤 면에서 화면에 딱 붙어 있다는 느낌, 캔버스에 붙어있는 색, 물감이다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그림을 그릴 때 선으로 윤곽을 정교하게 그리고 그래서 색칠도 정교하게 하여 명확하게 보이게끔 할 수 있지만, 바로크 회화는 면적으로 윤곽을 잡아나가는, 터치를 강하고 두껍게 하여 면을 구성하여 형태를 만들어가는 전략을 취한다.

=> 1. 선 상태 – 회화 상태

선적일 때는 느낌이 굉장히 조각적, 촉각적이다. 윤곽은 더듬어서 만질 수 있기 때문.
바로크 예술은 예리한 윤곽이 줄어들고 평면적이 되면서 촉각적이기 보단 시각적이며 색의 효과를 더 중시하였다.



Last supper(최후의 만찬) - Tintoretto, 1592-94

Last supper(최후의 만찬) - Leonardo da Vinci, 1494-99

틴토레토는 매너리즘에 속하지만 이 사람의 그림은 굉장히 바로크적이며 실제로 루벤스에게 깊은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위 그림은 최후의 만찬 장면인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것과는 다르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굉장히 명료하고 평면적인데 비해 틴토레토의 것은 복잡하고 테이블이 대각선으로 들어가면서 화면을 굉장히 깊히 쓰고 있다.

=> 2. 평면 - 심오(깊이)

* 틴토레토(Tintoretto, 1518년-1594년)
이탈리아의 화가. 미켈란젤로의 소묘와 티치아노의 색채를 목표로 하였으며, 다시 인공적인 빛과 그림자, 과장된 단축법을 써서 극적이고도 순간적인 효과를 화면에 폭발시켰다. 초기의 대표작 <노예를 구출하는 성 마르코>에서는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법을 보여 주었다. 1550년대 후반부터 공간 효과와 극적 효과가 한층 더 뚜렷이 전개되어 갔다. 1584년 <성 마르코의 기적>을 발표하여 베네치아 파로서 그의 지위가 굳어졌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카르파치오와 엘 그레코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대표작으로 <천국>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David - Michelangelo, 1501–04

David - Gian Lorenzo Bernini, 1623–24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와 베르니니의 다비드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켈란젤로의 것은 고전주의의 전형으로 조용하고 고요해 보인다. 행위가 안에서 자기완결되어 있다. 그리고 일종의 영원한 순간이다. 반면에 베르니니의 것은 역동적이다. 행위가 완결되지 않은 특정 순간이며 돌을 던지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서 조각 바깥의 대상과 공간을 함축한다.

=> 3. 폐쇄된 형식 – 열린 형식

르네상스, 고전주의는 상상력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지 않지만 바로크 예술은 이렇게 열러있기 때문에 호기심을 자아내고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조반니 로렌초 베르니니(Giovanni Lorenzo Bernini, 1598년 12월 7일 ~ 1680년 11월 28일) : 뛰어난 바로크 조각가이자 17세기 로마의 건축가이다.



The Night Watch(야경) - Rembrandt, 1642

단체사진을 찍을 때 내 얼굴이 잘 나오기를 바란다. 당시는 사진대신 초상화를 그리게 했는데 위 사진도 집단초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선명하게 그리지 않고 빛의 효과로 인한 명암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일부는 흐리고 어둡게 그려내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당대에 엄청난 혹평을 받고선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잃게 된다.)

르네상스 회화의 경우에는 다양성이 있다. 그 다양성의 의미란, 그림안에 대상들이 있을 경우 그 대상들의 윤곽이 다 독립적으로 명확하다. 이렇게 되었을 때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데 이것을 피하는 방법은 구도의 안정감이다. 삼각형, 대칭의 구도를 통해 안정감을 이끌어 내는데 이 것은 다양성의 통일이라는 느낌을 준다.

좁은 무대에 모든 등장인물이 다 올라와 있다고 해보자. 다소 복잡하고 어지러울 것이다. 이것이 르네상스 회화이다. 이럴경우 르네상스 화가들은 중간에 있는 사람은 세우고 주위로는 조금 굽힌 자세를 만들어서 삼각형 구도등을 만들게 된다.

허나 바로크예술은 다르다. 바로크 화가들은 가운데 조명을 강하게 주고 주위 인물들은 어둠에 가리는 방법으로 산만함을 정돈을 하면서 동시에 무대의 극적 긴장감이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 4. 다수성(다원성) - 통일성

*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년 7월 15일 ~ 1669년 10월 4일)
: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이다.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와 벨기에의 루벤스와 함께 17세기 최대의 화가로 손꼽히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유럽 회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 <마리아의 죽음> <성 가족>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Supper at Emmaus(엠마오의 만찬) -  Caravaggio, 1601

예수의 제자들이 어느 낯선 사내와 동행을 하다가 식사를 하게 되는데 갑자기 그 낯선 사내의 얼굴이 밝게 빛나면서 예술의 얼굴로 변하였다. 그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왼쪽의 팔의 단축법이 인상적인데 저러한 단축법이 만들어내는 깊이감은 놀라움을 더 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감정표현은 바로크예술의 특징이다. 고전주의 예술에서는 이성을 강조하고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지만 강하고 바로크작품에서는 연극적이 제스춰가 자주 등장한다.

빛의 사용을 보면, 어둠으로 감춰진 부분은 배경과 정확히 구분이 되지 않느다. 뚜렷한 형태를 탐구한다기 보다도 형태 이전에 빛과 어둠의 관계 문제가 전체 회화를 이끌어가는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 5. 명료성(절대적명료성) – 불명료성(상대적명료성)

*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년 9월 29일 – 1610년 7월 18일)
: 이탈리아 밀라노출신의 화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지오(Caravaggio)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극적인 조명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초기에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들로 인해 비난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나 점차 인정받게 되어 유명해진다. 로마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미술의 흐름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The ecstasy of saint theresa (성녀 테레사의 환희) - Bernini, 1647-52

벽을 파서 조각상을 배치하는 경우, 르네상시 미술에서는 조각상이 반드시 벽 안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바로크예술에서는 조각상이 벽 밖으로 튀어나와 손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깊이감이 더 크다. 위의 베르베르의 조각에서도 손이 나오고 옷의 주름이 매우 깊이감 있게 제작되었다.

17세기는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시대였다. 합리주의에 따르면 감정은 오류의 원천이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한다. 물 속의 젓가락을 보면 시각적으로는 휘어져 보이지만 촉각으로 만져보면 곧다. 시각은 우리를 속이고 촉각이 진리를 말하는 것. 감정보다는 이성, 시각보다는 촉각, 이것이 고전주의적 이상이다.

이에 반발한 바로크 예술은 감정이 전반에 드러나게 된다. 위 조각도 성스러움을 가장하여 섹슈얼 한 요서를 표현하고 있다.  수녀와 수녀의 가슴을 금화살로 찌르는 천사를 통해 쾌락적 황홀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테레사의 표정과 옷의 주름이 말하는 육체의 진동은 여성의 오르가즘을 말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바로크의 감추어진 에로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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