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서양미술사 06 : 알레고리와 수수께기 - 중세 미학 2

중세의 미의식 변화
: 미에 대한 형식적 정의가 미에 대한 실직적 정의로 변화
: 아름다움은 형태에 있다 >> 아름다움은 빛, 색체에 있다.

그런데 중세인들이 아름답게 본 빛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빛이 아닌, 천상의 빛이고 초월적인 빛이기 때문에 화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을 눈에 보이게 하기 위해 번쩍이는 금과 은 보석, 촛불, 스테인드글라스 등 재료를 이용해서 표현하였다.
(르네상스에 이르러서는 물감으로 표현)


재료를 이용하여 천상의 빛을 상징을 했는데 이 때 이용한 방법이 바로 유비이다.

유비
: 서로다른 사물의 상호간에 대응적으로 존재하는 유사성 또는 동일성을 이름. 아날로지


중세예술은 현대예술의 원리와 상당히 비슷하다.
1.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닌 비가시적인 것을 기사화함
2. 재료를 처리하여 형식을 만들고 형식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표현한다. - 중세예술 속에 스토리가 있다. 허나 정말 중요한 내용은 형식, 재료 속에 들어있다. 형식과 재료의 빛을 통해 중요한 의미작용을 해결하고 스토리는 부차적인 의미만을 갖는다. 현대예술도 내용이 없고 뭘 그렸는지 알 수 없기도 하다.(내용이 형식 속에 침전된다.)


 기도문으로서 라틴어 철자가 들어가 있다.

굵은 철자로 적힌 부분은 라틴 십자가 모양을 형성. 십자가 모양을 따라 읽으면 또 다른 텍스트가 나온다. 말로 표현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비수에 찔린 비둘기와 분수 - 기욤 아폴리네르 

현대예술작품으로 상형시(Calligram)이다. 불어로 된 시인데 불어를 몰라도 새와 분수의 형상을 알아 볼 수 있다. 이런 작업이 몇백년 전에 중세에서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린디스판(Lindisfarne)의 책, 698년 경

Χριστός(크리스토스, 그리스도)의 X와 R을 금박을 하고 은박을하여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했다.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자 자체도 중요했던 것이다.

중세는 기호와 사물의 구분이 없다. 그렇기에, 문에 보이는 것 만을 표현하려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림과 글이 같이 나올수 없지만 중세에는 글자가 조형적인 요소로 그림과 함께 배치되었다.

언젠가 밤의 어스름 속에 나타났다 - Paul Klee, 1918

언뜻보면 아름다운 무늬처럼만 보이지만 안에 철자(시)가 들어있다. 시 텍스트를 취해서 조형화를 한 것. 현대예술에서 파울클레가 최초로 한 그림 안에 이미지와 글자가 나란히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중세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Saint Sebastian - Naumburg cathedral(나움부르크 대성당, 1250-60)

예술이 현세(3차원 공간)가 아니라 내세, 초월적인 세계를 지향할 수록 형태가 제작적 비례를 따르게 된다.
: 형태가 단순화, 디자인화, 구성에 가깝게 변화
: 색체도 단순화 되서 원색위주로 변함
>> 현대의 추상화와 같은 효과를 갖는다

위 그림에서, 초점을 흐려서 색감만을 받아드려보자
색감의 인상을 가지고 아래의 그림을 보면,

성당(Katedrala) - 프란티섹 쿠프카(František Kupka, 1912–13)

우리가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성당에 가서 초점을 흐렸을 때 얻어지는 색체의 인상을 화폭으로 옮겨놓은 듯 하다.

이렇듯 중세와 현대의 화가는 매우 가깝다. 중세는 원근법이 없던 시절이고 현대는 원근법을 없앤 시절이다. 원근법이 사라지면서 두 시대의 그림이 비슷해진다.

Cimabue의 작품. 천상에서 내려온 예루살렘 성을 모델로한 로마

고딕 후기,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들에게는 아직 원근법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시점이 고정되지 않고 다시점을 가진다. 실제로는 높은 성벽에 가려 내부가 보이지 않으니 시점이 점점 올라가면서 차곡차곡 쌓아올린듯한 구축적인 양상을 가지는데, 이러한 다시즘은 현대예술의 큐비즘, 입체파 작품과 비슷하다.


Red Eiffel Tower -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1911-12)

에펠탑을 여러개의 시점으로 표현했고 차곡차곡 쌓아올린듯한 구축적인 양상을 가진다.



중세는 창작의 자유를 누렸다. 그로테스크(추한 것 + 우스꽝스러운 것)한 것을 자유롭게 표현 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이후의 관념은 예술은 아름다운 것, 고상한 것. 따라서 추한것의 묘사가 배제된다.
그러나 중세때는 세상의 모든것은 신의 섭리, 신의 빛이 깔려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것은 덜 아름다운 것이다. (모두다 신이 만든 것이다.)

추한 것도 예술에 등장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던 중세시대 미술은 현대예술의 초현실주의적 효과를 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Shirley Temple - Salvador Dali(1939)

'추'가 예술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19세기 중반부터이다.(카를 로젠크란츠 <추의 미학>)
살바도르 달리를 얘기할 때 함께 얘기되는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로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을 보면 기괴망측한 형상들로 가득차있다.
보슈는 시대를 앞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중세적 전통을 이은 것이다. (기괴한 그로테스크적 형상은 로마네스크 예술에 많이 나타난 모티브이다.)


쾌락의 정원 - 히에로니무스 보슈




중세의 이러한 예술적 특징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로 인해 중단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창조질서에 적합하게 그려라' 라고 말한다.(근대적 사고방식의 존재) 존재하는 것만 그려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리는 것은 신의 창조질서에 위배된다. 상상력에 따라 작업하지 말고 신의 말씀에 더 귀 기울려서 실재하는 것 만을 그려라.



유비로서의 중세는 추상화, 초현실주의, 큐비즘, 글자(오브제), 표현주의 등 모든 것이 다 있었던 시절이다. 그렇기에 현대예술과 많은 유사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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