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3일 수요일

빅쇼트

빅쇼트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실체와 한계가 주는 상실감 내지는 공포감
★★★☆


J.C 첸더 감독의 <마진콜>은
파산직전의 24시간동안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내부자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였다.
빅쇼트 보고 비교해서 다시 떠올려보니
인물의 심리에 집중한 덕에
은행가의 탐욕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면서
월가의 모럴해저드적 역겨움이 더 잘 표현된 것 같다.

마진콜이 이렇게 디테일을 묘사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시스템에 대한
관조적 폭로를 시도했다면

반면 <빅쇼트>는
인물의 내면심리보다
월가의 집단적 무지와 모럴해저드를 보여주면서
거시적인 분위기로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실체를
블랙코미디로 잘 풀어내었다.

확실히 더 친절하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아서
접근하기가 쉬웠다.

게다가 마진콜 이후로 공부가 되어있던 상태라
다행스럽게도 흐름을 잘 따라가며
흥미롭게 감상 할 수 있었다.


아래는 리먼사태와 그 해결과정을 취재한
다큐를 기본으로 정리했던 내용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빅쇼트에서는 설명되지 않은,
그 이후 어떻게 그 사태들이 해결되어 갔으며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만든 부도덕한 돈장난의 결과로
손해 본 건 그들이 아니라 서민이고
그들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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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들이 위험을 피해갈 방법, 즉 안정적으로 대출을 팔면서 대출자체로부터 위험을 분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취지에서 출발해 신용부도스와프가 90년대 개발되었다. 금융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한다는 명목하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 신용부도스와프 (Credit Default Swap)
영문 첫글자를 따서 CDS라고 하며, 부도의 위험만 따로 떼어내어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이다. 예를 들면, A은행이 B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한 경우에 B기업이 파산하면 A은행은 채권에 투자한 원금을 회수할 수 없게 된다. A은행은 이러한 신용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C금융회사에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신, B기업이 파산할 경우에 C금융회사로부터 투자원금을 받도록 거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용파생상품은 1990년대 중반 투자은행들이 신흥 경제국에 투자하는 데 따르는 신용위험을 다른 투자기관으로 이전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으며, 2004년 이후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채무자로서는 자금을 조달하기 쉽고, 채권자로서는 일종의 보험료를 지급하면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나 채무자인 기업이 부도가 날 경우 보증인 격인 금융회사에 손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하여 금융회사가 부실해지면 채권자인 은행도 연쇄적으로 부실화된다. CDS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경우 자금조달 시장이 마비될 우려가 있으며, 실제로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를 증폭시킨 요인으로 지적된다.




은행은 대출을 할 때마다 은행업 규정에 따라 대출금에 대한 일정한 예비자산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대출금이 상환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허나 신용부도스와프같은 신용파생상품 덕분에 은행은 자금요건을 피해갈 수 있다. 은행이 보유해야 하는 자금의 양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신용을 설정할 수 있고 더 많은 대출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위험부담은 덜고 자금을 해방시키는 효과, 이것은 중대한 금융혁신이었다. 이런 혁신의 장기적 의미는 세계 경제의 혈액과 같은 신용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됐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요소로, 신용은 성장과 기업의 자본 배치, 고용 등에 도움이 된다.

허나 여기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금융인들은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길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신용파생상품은 무엇보다도 규제와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비공개 시장(장외시장)이었다. 파생상품은 일반적으로 비슷한 장내의 유가증권(보통주, 채권 등)의 경우에 비해 수익이 10배나 컸다. 수익성이 엄청난 파생상품시장은 투명성도 없고 규제도 없는 어둠속으로 들어갔고 미국과 전 세계에서 파생상품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성장과 함께 신용부도스와프의 기법은 소비자의 신용 위험 목록에 적용되었는데, 특히 담보대출(모기지론)과 관련된 신용위험이었다.

은행은 거대한 모기지 풀을 구입하고 신용부도스와프를 구입해 전부 내부로 들여온 다음 모든 것을 섞어서 증권상품을 만들었다. 거대은행들은 계속에서 모기지 포트폴리오를 판매했다. 위험도가 높은 서브프라임 부채를 포함한 CDO가 점점 많아졌고, 신용평가기관을 계속 참여시키기 위해(좋은 신용등급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신용부도스와프가 팔렸다. 처음 시작한 것과 크게 다른 상품을 다루게 된 것이다.

* 부채담보부증권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 요약하면 회사채나 금융회사의 대출채권 등을 한데 묶어 유동화시킨 신용파생상품.
영문 첫글자를 따서 CDO라고도 한다. 회사채나 대출채권 등 기업의 채무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금융기법의 한 종류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것(Arbitrage CDO)과 신용위험을 투자자에게 전가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것(Balance Sheet CDO)으로 구분된다.
신용등급을 높이기 위하여 채권보증업체(모노라인)들이 보증을 서기도 하며,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채권들을 섞어 새로운 신용등급의 CDO를 만들기도 한다. 신용등급에 따라 다시 최우량CDO·우량CDO·비우량CDO·에쿼티(Eqiuty)로 구분된다. 그러나 어떤 채권이 담보로 편입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데다가 담보로 사용된 회사채나 대출채권이 제때 상환되지 않을 경우에 최우량CDO라 하더라도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처음 등장한 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발행 규모가 증가하였으며, 2006년 미국 등지에서 1조 달러 규모의 CDO가 발행될 정도로 성행하였다. 미국의 모기지 전문 대출기관들은 부동산 활황을 틈타 대출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모기지 채권이나 모기지담보부증권(MBS)를 대량으로 발행하였고, 투자은행들이 이를 사들여 합성한 뒤 발행한 채권이 바로 CDO였다. 2007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높아지면서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벌어져 채권 가격이 폭락함으로써 주요 금융회사 등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고 미국의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낮은 금리와 모기지론.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은행들은 점점 많은 CDO를 묵었고 이론적으로 한계는 없었다. 투자자는 실제 모기지를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합성CDO라는 상품 덕분에 투자자들은 다른 사람의 부채 포트폴리오에 여러번 돈을 걸 수 있었다. 상품을 사는 쪽이나 파는 쪽이나 기초시장의 규모에 제약을 받지 않고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합성 CDO에서는 이 모기지 묶음이 어떻게 될지에 근거해 돈을 걸기만 하면 된다. 다른 사람이 이미 걸었어도 다른 사람이 몇 번이고 다시 걸 수 있다. 투자대상에 대한 경제적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도박일 뿐이다.

붕괴는 2006년 말에 시작되었다.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을 땐, 소수의 은행가들만이 자신들을 가둔 거품을 보았다.
2007~2008년경 모든 스마트머니는 게임이 끝났음을 알았고 은행들은 피할 수 없는 골칫거리를 효과적으로 재포장하려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 상황을 어떻게 유리하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궁리였다.

* 스마트머니
: 고수익을 위해 장세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는 자금을 뜻하는데, 월 가에서 나온 용어이다. 돈이 될 수 있는 대상을 가려내 한발 앞선 투자를 한다는 점에서 ‘똑똑한 돈, 현명한 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편 움직이는 속도가 스마트머니에 비해 떨어지는 자금은 정크머니(junk money)라고 한다. 스마트머니는 법과 제도의 규제가 많은 기관투자자와 전문 지식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전문 투자 지식이 있으면서 일반인이 꺼리는 위험도 수용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고수익-고위험 자산에 투자하지 않고 철저히 저평가된 자산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가치 투자와 유사하고, 필요할 때는 차입을 활용하므로 헤지펀드(Hedge fund) 전략과도 같은 점이 많다.


경기침체를 기회를 삼은 월스트리트의 은행 중 하나는 골드만삭스였다. 골드만삭스는 해로운 서브프라임에 포함된 일련의 CDO 상품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팔았다. 허나 그들은 신용부도스와프를 이용하면서도 상충되는 투자를 하였다. 부동산 거품이 터졌을 때 돈을 번 유일한 대형은행이다.

어쨌든,
주택 가격의 위험성에 대해 모두들 착각하고 있었다. 지역적인 집값 하락은 있어도 전국적인 하락은 없을 거란 생각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상당한 규모의 여러 금융 기관은 그 위험들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영 정보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고 있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사람들은 모기지론을 갚지 못하기 시작했고 이제 모든 것은 신용부도 스와프가 애초 취지대로 지불을 할 수 있을지에 달렸다. 은행들은 예금 인출 사태에 민감하다. 모두가 한꺼번에 돈을 찾으려하면 은행은 기능을 할 수가 없다. 보험회사에 대한 인출사태까지 발생하였다. 보험회사 AIG가 보유한 신용부도스와프는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AIG가 신용부도 스와프를 많이 보유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보험회사는 신용이 중요하고 무슨 이유에서든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위험 전가 과정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AIG는 그 모든 신용 파생 상품을 청산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위험성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고 손실을 보충할 자금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국 정부가 그들을 도와주기에 이르렀다.)

은행들은 이 시장을 자기들만의 은밀한 게임으로 만들었다. 한쪽 문으로 위험을 내보내 업무의 결과를 조작하지만 그 위험은 다른 문을 통해 은행시스템으로 돌아왔다. 위험은 은행시스템을 떠나지 않았다. 계약을 이행 못해 이 사슬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끊어지면 전체 시스템은 붕괴되고 만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 사태가 끝나고 미국의 집들은 텅텅 비게 되었다. 심지어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너무 다양한 방식으로 분할되고 투기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담보화된 채권 풀을 투자자들이 나눠 가지는데 그 투자자들은 말 그대로 전세계에 있다. 그래서 빈 건물이 됐고 대부분 파손된 상태이고 이 버려진 건물을 어찌할 방법은 없다. 도시는 삭막하고 생기를 잃어갔다.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탐욕 때문에 시민들은 파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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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이 터진 후 월스트리트의 대형은행들이 신용을 잃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베어스턴스가 제일 먼저 무너졌다. 베어스턴스는 유해자산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엄청난 투자를 했었다. 수십만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사서 묶은 다음 증권을 만들고 투자자들에게 판 것이다. 하지만 거품이 터지자 수습은 불가능했다. 주가는 떨어졌고 인출사태로 지급 준비금은 줄어들었다.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티모시 F. 가이트너는 급히 조사에 들어갔다.

베어스턴스는 수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빚을 갚아도, 갚지 못해도 다른 부도사태를 줄줄이 낳을 상황이었고 가이트너는 중앙은행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스템의 위험을 보았다. 베어스턴스와 월스트리트의 다른 은행들이 놀라울만큼 얽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여파가 올지 아무도 몰랐다. 어떤 기관이 피해를 입고, 어디서 인출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가이트너는 베어스턴스가 망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고민했고 결국 이 회사가 금융계 전체를 끌고 내려가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한편, 정부의 규제 책임자들은 베어스턴스의 급격한 추락을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금융 시스템을 감독해야 했음에도 시스템에 내포된 위험에 무감각했으며 수년동안 분명히 드러났던 시스템의 근본적 병폐를 보지 못했다.
30년동안 워싱턴은 월스트리트에 대해 점차 방관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따라서 월가는 거의 감시를 받지 않는 가운데 아주 복잡하지만 수익성이 좋은 상품을 수없이 만들어 내었다.
그것은 마치 암시장 같았다. 투명성은 수익을 떨어뜨리고 거래비용을 떨어뜨린다. 은행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거래 비용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그래서 불투명한 것을 좋아한다.

가이트너는 대공황 최고의전문가이자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 의장에게 연락을 취하였고 벤 버냉키는 사태의 위험성을 직시하고 반드시 통제되어야 할 일이라고 확신했다. 버냉키는 당시 재무장관 헨리 폴슨에게 베어스턴스가 무너졌을때 금융시스템에 닥칠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다.

폴슨은 그 파산의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했을 때 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결론내리고는 3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사용하였다. 베어스턴스는 가이트너의 중개로 JP모건에 매각되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한 일은 베어스턴스의 장부에서 나쁜 것은 정부가 다 떠않고 JP모건이 좋은 것만 사게 해 준 것이었다.

자유시장주의자로서 이런 정부의 개입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재무부장관 폴슨은 월가를 향해 공개적으로 모럴해저드를 경고하였다. 도덕적 해이가 제기하는 문제는 누군가를, 그가 자초한 문제로부터 구제해 줬을 때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피하는 대가로 어떤 보상을 해 줄 거냐는 것이다. 폴슨은 구제는 베어스턴스 한 번 뿐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2008년 가을, 월가에는 분명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번에 어디가 터질지 알 수 없었다. 세계적 유동성 위기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갔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이번에 직격탄을 맞은 곳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였다.

리먼브라더스는 살아남으려면 하루에 2천5백억 달러를 구해야 했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빠져나갈 돈이다. 모기지가 월가 최고의 카지노사업이 되어가던 시절 리먼브라더스는 수천억 달러를 배팅하던 거물 도박가였다. 베어스턴스의 경우처럼 리먼브라더스의 베팅도 실패엿고 월가 전체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이트너는 벤 버냉키에게 리먼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안그러면 신용을 잃을 것이며 구제전략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에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가 닥친 것이기 때문에 재무부장관 헨리 폴슨은 엄청난 정치적 압박을 받았다.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압박과 도덕적 해이대한 우려가 컸다.

2008년 9월 12일 금요일밤, 시장이 폐장 한 뒤 월가의 대형은행 수장들이 뉴욕연방은행준비은행에 소집되었다. 그 자리에는 10여 명의 CEO가 모였고 연방준비은행의 가이트너와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있었다. 폴슨은 메시지를 전했다. 리만브러더스는 추락하고 있으며 정부의 구제는 없을거라는 얘기였다. 정부는 어떠 형태의 지원도 없을 것이며 스스로 공동으로 해결책을 찾을 것을 말했다. 다음주 월요일, 리만 브라더스는 파산 신청을 하고만다.


연방은행준비은행과 재무부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큰 사건이지만 대재앙을 일으키지는 않을 줄 알고 있었다. 폴슨은 시장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 믿었지만 곧 틀렸음을 알게된다. 리먼이 무너지자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이 거대한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시장이 공포에 휩싸이자 온갖 지불이 중지됐고 은행들은 대출해 주지 않으려 했다. 모두는 은행 파산의 가능성을 두려워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분석 모형도, 절차도 없이 긴급한 결정들을 내렸다. 이러한 구제 금육정책 입안자들의 일관성 없는 신호를 보냈고 시장은 앞날을 예출할 수 없기에 모든게 멈췄고 세계 유동성의 위기를 일으켰다.

리먼브라더스에 이어서 세계최대의 보험회사인 AIG가 무너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리먼 파산 시 엄청난 돈을 지불하기로 했던 것이다. AIG에는 자기들이 했던 약속을 이행할 돈이 없었다.  오바마 당시 대선후보는 지금까지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는데 폴슨 장관과 정부는 당시 오바마 후보에게 연락해서 세상이 끝날 위기에 처했으니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오바마는 AIG의 파산이 리먼 브라더스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며 전세계적인 불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을 듣게된다. 가이트너도 AIG의 파산이 리만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했고 또한번의 구제를 주장했다.

폴슨은 다시 방향을 전환했고 가이트너의 AIG 구제를 지원했다. AIG를 망하게 놔둘 수는 없었기에 도덕적 해이에 대한 말은 쏙 들어갔다. 원칙은 내다버리고 정부에 어떤 비판이 나오건 경제를 구해야 했다.

가이트너는 헤어컷에 대한 결정을 해야했다. AIG와 위험한 거래를 했던 은행들이 재정적 타격을 입도록 만들어 처벌을 해야할지의 여부였다. AIG를 구제하는 대신,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등에게 헤어컷을 받아들이라고 했을 때, 보험증권에 대한 에누리를 하여 보험에 대한 권리는 갖지만 100% 다 유지할 수는 없고 50%로 줄이는 데 동의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가이트너가 내린 최종 결정은 그것이 아니었다. 미국정부가 AIG에 대한 거대은행들의 청구액을 전액 청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헤어컷이 투자자들을 위축되게 만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정부는 1800억 달러 이상을 책임지게 되었고 그 돈을 가져가는 것은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다른 은행들이다.

가이트너가 AIG 구제를 지휘했지만 대폭락을 막지는 못했고 수요일쯤에는 세계 자본시장이 거의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벤 버냉키는 헨리 폴슨 장관에게 연락하여 도저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으니 정부가 금융계에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더 이상 이 문제는 건별로 해결 할 수 없고 월가의 대규모 구제를 위해 의회를 설득하기를 원했다.

목요일 늦은 오후, 폴슨장관과 버냉키 연준의장은 하원의장에게 갔고 양당의 원로 상하원의원들이 의회에 모였다. 폴슨은 막힌 신용시장을 트는데 7천억 달러를 쓸 권한이 필요하며 정부가 손을 쓰지 않으면 미국과 세계의 금융 시장이 며칠만에 붕괴할 거라고 했다. 폴슨는 의회의 즉각적인 승인을 원했다.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은 크게 반발했고 의회가 머뭇거리는 동안 시장은 더욱 곤두박칠 쳤다.

그런데 갑자기 대선주자들이 끼어들게 된다. 존 메케인 대선후보는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 수뇌회담을 소집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9월 25일 백악관에서 서둘러 회의가 소집되었다. 대통령과 폴슨장관, 오바마, 메케인, 그리고 상하원 중진들이 모였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의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오바마는 그동안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에게 정보를 받아왔고 필요한 조치에 대해 설명하였다. 반면 메케인은 상황에 대한 파악이 미흡하고 계획도 전략도 없었다. 극적인 조치를 약속했던 메케인은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냈고 대통령후보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권위를 보여주지 못했다.

또 한 주가 지나갔고 의회는 결국 폴슨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폴슨은 법안 통과로 7천억 달러를 손에 쥐었다. 이른바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이다. 자유시장의 사도이자 도덕적 해이를 경계했던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월가에 대해 대공황 이후 최대의 정부개입을 시행하게 된다.

10월12일 그는 행동에 나섰다. 그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가이트너와 함께 구상한 바를 시행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미국 최대은행 수장들을 모아놓고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을 얘기하였다. 은행들에게 납세자의 세금을 나눠준다고 아주 신속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돈을 받겠다고 동의하기 전에는 방에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전례없는 일이었다. 수십억달러에 대한 댓가로 정부는 은행에 대한 지분을 갖게 된다. 하지만 금융시스템이 추락한 와중에도 일부 은행가들은 반발했다. 폴슨 장관은 반발하는 은행장에게 동의하지 않은 은행은 월요일 아침 자본이 부족한 기관으로 발표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계약조건은 매우 관대했다. 모기지를 변경할 필요도 없고 급료나 보너스를 제한할 필요도 없고 전과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중요한 규제적 변화에도 합의할 필요가 없었다. 폴슨 재무장관은 미국에서 제일 부유한 은행들에게 1250억 달러를 그냥 나눠 준 것이고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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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끝나고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허나 실업률은 상승하고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오바마는 당선되고 개혁적인 경제전문가들로 이루어진 팀을 꾸렸다.

그리고 그 때, 치명적인 모기지 자산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던 초대형 은행 시티그룹이 무너지고 있었다. 경제는 계속해서 붕괴해 가는 정신없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는 빠져나가고 있었고.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에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1250억 달러에 이어 시티그룹을 살리기 위해 추가적으로로 200억 달러를 더 쓰게 되었다. 책임자가 없었기에 뭔가를 해 보겠다는 정치적 움직임없이 세금을 퍼주는 방식만 계속되었던 것이다.

경제붕괴는 대선 8개원 전부터 시작되었다. 오바마 당시 대선후보는 상황이 악화될 것을 일찍 깨달았고, 2008년 3월에 있었던 쿠퍼 유니온 대학의 연설에서 월가의 실세들이 귀를 귀울이는 가운데, 월가의 변화를 촉구하였고 규제를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당선 후 대통력직을 인수하던 중 오바마는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그의 계획을 수행할 팀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문제였다. 이 때 미국의 금융위기는 전세계로 전염병처럼 확산되어갔고 전세계적인 대공황의 위기로 이어지면서 오바마는 가이트너가 재무부 장관으로 내정되하였고 이 뉴스가 시장을 안심시키길 바랬다. 또한 대통령 수석경제고문으로 클린턴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가 내정되었다.

이렇게 월가의 내부자들로 팀이 구성되었다. 오바마는 주류 인사들을 원하고 주류의 조언과 지지를 원했다. 은행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 처럼 보이는 이 팀은 문제를 일으킨 배관공을 또 부르는 것과 같지만, 오바마는 신속한 문제처리를 위한 선택을 했다.

백악관은 가이트너에게 세계를 위기에서 구할 답을 요구했다. 준비가 됐건 안 됐건 재무부의 계획을 공개해야 했다. 2009년 2월 9일 오바마는 다음날 가이트너가 금융시스템을 구할 계획을 내 놓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오바마는 특효약이 있다며 기대치를 높혔다. 하지만, 가이트너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대통령의 수석경제고문이 서머스도 탐탁치 않아했다.

다음날 가이트너는 연단에 서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민들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직책을 맡은 남자를 그때 처음보았고, 그런 가이트너 역시 TV에 나오고 전국적인 기자회견은 처음이었기에 서툴렀다. 어쨌거나, 계획은 핵심은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것이었다. 정부가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거대은행들의 건강을 점검하고 필요하다면 최악의 상황에 있는 은행들을 구제한다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이트너의 계획을 불충분하다고 여겼다. 그가 계획을 발표한 날, 시장은 400포인트 하락했다.

금융시장은 10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계속 추락했다. 새정부가 들어서고 3주만에 오바마는 재무장관 교체 압박을 받았다. 모두가 희생양을 필요로 했는데 그것이 가이트너였다.

대중은 월가에 대해 분노했다. 미국 전역의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의회는 대중의 분노에 응답해 거대 은행의 수장들을 소환했다. 백악관에서는 국민의 분노가 머지않아 대통령에 에게 향할 것을 우려했고 CEO 한 명을 본보기로 징계하고자 했다. 방만한 경영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고 뱅크오브아메리카 CEO의 해고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허나 가이트너는 은행들에 정부가 간섭할 거라는 인상을 줄 것이고 그러면 개인 투자자들이 떨어져 나갈것이므로 이에 반대했다. 가이트너는 금융계가 여전히 취약하다고 믿었고 신용을 해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개념이 그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는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을 굉장히 두려워했다.

가이트너는 지금은 월가를 개혁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백악관 내는 달랐다. 수석경제고문 로렌스 서머스는 월가가 근본적으로 망가졌으며 공격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에겐 대담한 계획이 있었다. 그는 망하기에는 너무 큰 은행들의 구조를 조정하고자 했다.
서머스는 시티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같은 신종 초대형은행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다른 은행들을 사고 사고 또 사들이며 점점 커졌고 너무 규모가 크고 서로 연결되있어서 도산은 경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정부는 위기에서 이들을 구제할 필요를 느꼈다. 말 그대로 망하기에는 너무 커진 것이다.

서머스는 가장 약한 은행을 인수해 국유화하면 좋은 본보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월가가 자기들 재산과 국가의 재산으로 도박을 하다가 망하면 은행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교훈이다.

3월 15일,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서머스와 가이트너의 6시간의 결전이 벌어졌다. 오바마는 듣고만 있었다. 2주후 오바마는 거대 은행의 CEO들을 백악관으로 소집했다. 은행가들은 극적인 개혁을 강요당할까봐 두려워했다. 거대 은행에 대한 금지법, 간부들의 연봉제한, 빈곤한 주택소유자에 대한 모기지 차환등을 예상할 수 있었다. 서머스의 엄중한 심판과 가이트너의 신중한 장려책 중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회의가 진행되면서 성난 군중에 대한 얘기는 쏙 들어갔다. 오바마는 대민 관계의 재앙이 정치적 재앙으로 변하고 있다며 자기가 돕겠다고 말한다. 대통령은 은행가에 어떤 약속도 요구하지 않았다. 겁먹은 CEO들이 모여 있었고 대통령은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기회를 놓친것이라 볼 수 있고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바마는 가이트너의 판단을 따랐고 어쨌거나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2009년 봄, 스트레스 테스트가 시작됐다. 연방 준비은행의 감독관들을 은행들로 보내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모든 은행의 관리자들이 전례 없는 방식으로 협력하며 3개월간 모든 은행의 장부들을 조사했고 5월 7일 정부는 결과를 발표했다.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티에 따르면 미국 최대의 19개 은행들은 근본적으로 건강하고 곧 부채를 상환할 수 있었다.

가이트너와 그들은 꽤 유능했다. 금융계는 다시 수익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만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에는 도움이 안 됐고 이는 당연히 대중의 분노로 이어졌다. 2009년 8월, 월가에 대한 금융구제는 새로운 운동 세력인 TEA(세금은 낼 만큼 냈다.)의 분노를 부추겼다. 분노는 오바마를 향했다.

백악관 비서실장 람 이메뉴얼은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선 금융계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으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약속이 있어야 함이 필요하고 대통령에게 엄중한 심판이 필요함을 조언했다. 오바마는 선거기간에 강조했던 월가의 개혁을 부활시키기로 한다.

그 해 9월 14일,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1년이 되던 날, 대통령은 다시금 개혁을 옹호하기 위해 월가를 찾았다. 그는 은행 개혁 법률을 요구할 예정이었다. 연설은 월가 바로 옆에서 이루어졌다. 의회의 지도자들, 가이트너 장관 등 워싱턴의 실세들이 모두 모였지만 월가의 거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은행 CEO 중 누구도 해고되거나 기소되지 않았고 월가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초한 재앙에서 벗어나 평소처럼 잘 살고 있었다. 백악관이 그들을 다시 테이블로 끌어낼 방법은 없었다.

금융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대통령의 노력은 또 다른 우선사항과 경제하고 있었다. 의료보험 개혁이었다. 의료보험 전쟁은 치열했고 정부는 그와 관련한 공개적 싸움에 얽매여 가면서 백악관의 모든 정치력은 그 싸움에 쏠리게 된다. 백악관에는 은행 시스템의 구조적 개혁을 추진할 여력이 없었다. 의료보험개혁안 통과가 먼저였다.

월가 개혁은 의회에 맡겨졌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2010년 그 무렵 은행들은 이미 회복되어서 공격적으로 변했고 더 이상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개혁안의 많은 부분에 물타기를 하고 상원의원들을 매수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길을 모색하였다. 거대 은행에 주어진 국민의 세금의 일부는 규제 완화를 위해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쓰여졌다.

월가는 최고의 로비스트들을 고용했고 은행들은 워싱턴에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보여주는 것은 아주 작은 구멍만 남겨 놔도 영리한 월스트리트 사람들은 그 틈으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거대 은행들을 개혁하기 위한 의회의 핵심 제안들은 월가의 로비에 의해 법안에 포함되지 못했다.

2010년 7월 21일, 오바마는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 보호 법안(도드 프랭크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안에는 은행의 위험부담을 금지하는 법과 제한된 소비자 보호, 규제자의 새로운 권한이 포함되어 있지만 백악관 일부 인사들 조차 이 법안이 충분치 않음을 인정했다.

* 도드 프랭크 법안 (Dodd-Frank Act)
: 시스템리스크 예방대책 마련, 파생금융상품 규제 강화, 금융소비자 보호장치 신설,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각종 감독⋅규제책 신설을 골자로 하고 있다. 시스템리스크 예방을 위해 시장의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를 신설하였다. FSOC는 우선 금융회사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해당 회사에 자본유동성 위험관리에 관한 규제를 강화도록 요청할 수 있고 금융회사가 금융시스템을 심각하게 위협할 경우 FSOC 위원 3분의 2의 찬성으로 이 회사에 분사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한편 파생금융상품 규제 강화를 위해 그 동안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던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감독권한을 증권거래소 상품선물거래소에 부여했다. 규격화된 파생상품은 반드시 중앙청산소를 통해 청산거래하도록 했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소비자보호기구(CFPB)가 FRB 산하에 설치됐다. 또한 모기지대출제도를 개선해 차입자의 대출금상환능력 보유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하고, 차입자가 부담해야 할 모기지대출 상환금액을 공개하도록 했다.


허점은, 입법의 장애물들을 넘는 과정에서 꼼꼼히 마무리 짓지 않은 부분들이 아주 많고 그래서 아직 중요한 결정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인데 이런 결정이 꼭 대중의 감시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로비스트들이 끼어들어 영향력을 얼마든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대에 금융위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없는 형국이다. 오바마의 문제는 국민들에게 이만하 게 어디냐고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빠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는 논리는 증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얘기이다.

바로잡아야 할 세가지는 거대은행, 위험한 투자, 파생 상품이다. 이건 견해의 문제가 아니며 분명히 해결되지 전까지는 문제가 풀린 지 않은 것이다. 세계 경제에는 아직도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이 구름은 위험으로 가득하다.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한편,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은행들은 800억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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