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당시 으뜸가는 화가 제욱시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는 특히 포도를 실물처럼 잘 그렸다. 그가 포도를 그려놓으면 새들이 착각해 쪼아 먹으러 날아들었다.
제욱시스에게 경쟁자가 등장한다. 꽃을 잘 그리는 파라시우스. 제욱시스보다 더 낫다는 소문이 퍼지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제욱시스는 곧장 파라시우스의 작업실로 달려간다.
그러나 파라시우스는 보이지 않고, 천 반쯤 가려진 꽃그림이 걸려있었다.
제욱시스는 그림을 보기 위해 단숨에 천을 걷어내려 하는데, 아뿔싸! 커튼은 진짜가 아니고 그림이었던 것이다. 대결의 승자는 파라시우스였다.
이 이야기에서 그리스 예술가들이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리스 예술가들은 환영주의 추구하였다.
환영주의 - 실물과 똑같은 것을 추구, 진짜가 아닌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
이집트에서는 세가지의 문제점과 관련하여 자세를 단순화시키고, 단축법을 피하여 정면성의 원리를 추구하고, 보는 시점에 따른 변화는 무시해 버렸다. 그래서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얼추 일치하였다. 즉 변수보다는 상수를 추구한 이집트 예술
반대로 그리스 예술가들은 이집트 예술가들이 무시해버린 이 세가지를 의식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뮈론(로마, BC405~420 년경) - 원반던지는 사람
불변하는 동작이 아닌 우연적이고 순간적인 장면을 묘사한다. 그리고 단순한 동작이 아닌 인간 신체가 보여주는 복잡하고 다양한 동작의 묘사를 시도한다.
폴리클레이토스(로마) - 창을 든 사람 ( 도리포로스 )
세로로 반을 나눠 보면 좌우가 대칭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균형이 잡혀있어서 여기서 살아있는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 작은 차이를 콘트라 포스토라고 하는데 작은 차이가 큰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아나비소스(BC540년경) - 쿠로스
그리스 초기 작품을 보면 근육이나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긴 하지만 이집트 예술의 영향으로 기계적인 대칭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콘트라포스타가 없는 상태이다.
폴리클레이토스 : 콘트라 포스토 도입하였고 캐논을 제정
한번 정한 캐논으로 모든 것을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던 이집트와는 다르게 그리스 예술은 예술가의 독자성을 인정해 모두 결과는 다르다.
레오카레스(로마, BC405~420년경) - 벨베데레의 아폴로
굉장히 우하하고 아름답다. 초기 그리스 예술은 다소 딱딱한 숭고미를 추구했다면 여기서 부터는 상대적으로 거의 유미의 단계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작품도 사실은 엄격한 숫적 비례에 근거한 것이었다. 캐논을 적용 한 것.
히에론(BC 5세기 초)
이집트에서 정명성의 원리로 피하려고 했던 단축법을 그리스 예술가들은 오히려 즐겨 표현했다. 그림에서 보면 여전히 얼굴 옆모습의 묘사가 많긴 하지만 동작이 다양해지고 특히 발에서 단축법이 적용되고 있다.
둥근 모양의 안구가 가지는 해부학적 특성 탓에 커다란 대상을 멀리서 볼 때 직선은 사실 곡선으로 보이게 된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경험적으로 그러한 효과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리스 신전등은 일부러 약간의 곡률을 줘서 멀리서 신전을 보면 직선으로 보이게 하였다.
피디어스의 신상 같은 경우도, 아테나 신상은 높이가 12m까지 되는데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면 머리가 작아보이기 때문에 비례를 맞추기 위해 실제 비례와는 다르게 머리를 더 크게 만들었다.
이렇듯 그리스 예술가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매우 강조하였는데,
여기서 예술가과 철학가의 갈등이 발생한다.
플라톤은 사물이 가지는 객관적 속성을 중시하고 아름다움은 그러한 객관적 비례속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예술가들은 우리의 눈에 비쳐졌을 때의 아름다움에 주목을 한 것.
미의 객관주의
: 플라톤, 아름다움은 물건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속성이다.
: 플라톤의 철학은 관념론으로 이상적인 세상이 이데아로서 존재하고 우리 세계는 그림자일 뿐이다. 현실세계는 이데를 불완전하게 흉내 낸 것. 보여지는 아름다움은 가짜이다. 이데아의 세계는 기학적 세계이고 불변적이고 보편적인 세계이다. 따라서 그는 피타고라스적 삼각비가 지켜진 건축을 추구했고 당시의 환영주의 예술에 대한 반감 및 이집트에 영향을 받은 초기 그리스 예술에 대한 향수를 가졌다.
미의 주관주의
: 아리스토텔레스,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은 의미가 없다.
: 그리스 예술가들의 예술철학에 공감. 그리스 이전에는 유명한 예술가가 있을 수 없다. 모든 작품이 똑같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리스 시대부터는 어떠한 작가가 특정한 캐논을 가지고 그만의 차별성이 있었기에 특정 예술가의 이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
플라톤이 예술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모방한다는 모방 이론의 시초이다.
예술의 중심에 미술(재현예술이론) -> 고전주의 / 사실주의 / 인상주의 계보
예술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기에 부정적으로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현한다는 표현 이론의 시초이다.
예술의 중심에 음악(표현예술이론) -> 낭만주의 / 표현주의 이론적 바탕
예술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개인의 마음을 정화(감정을 훈육함)시킬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16세기 고전주의자들은 미의 이데아를 가정하고 그것을 모방하려고 애썼다.
18세기 낭만주의자들은 예술이 공포와 연민을 일으키는 숭고한 어떤 것이고 생각했다.
19세기 사실주의자들은 객관적이고 사회현실을 모방하려고 했다.
20세기 표현주의자들은 다시 경험을 초월한 숭고한 것을 표현하고 했다.
같은 20세기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는 표현주의를 서구의 타락한 예술이라고 비판한다.
**
이집트 예술과 그리스 예술의 차이를 설명하는 관점
1. 사회체제의 차이
이집트는 전제정치이고 개인의 다양성이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는 민주주의 사회이고 개개인의 의사가 중요하고 존중받았다.
2. 추상충도과 감정이입충동
미술사학자 빌헤름 보링거는 이집트-추상 충동, 그리스-감정이입 충동이라는 두가지의 충동으로 보았다. 이런한 충동의 원인은 풍토이다.
인간에게 적대적인 사막기후의 이집트에서는 인간은 자연을 극복하려하는 충동을 갖게 된다. 강이 범람할 때 마다 지형이 달라지는데 그렇게 변하는 자연속에서 불변을 찾아야 했고 불변하는 것은 모양이 아니라 면적이었기 때문에 기하학이 발전하고 의존하며 자연을 넘어선 추상적인 것을 추구한다.
반대로 자연이 인간친화적인 그리스에서는 인간이 자연대상에게 감정이입 충동을 갖는다. 그렇다보니 자연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를 추구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