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2일 금요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생의 감각을 뒤흔들어주는, 대자연 속 디카프리오의 고난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장인적 예술의지를 듬뿍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과연 어떻게 찍어냈는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씬들을 보고 있자면
영화 속 글래스(디카프리오)의 고난만큼이나
치열한 제작과정의 고난이 있었으리라 유추 가능하다.

반면 전작들과 다른 지점들도 보인다.
느리고 묵직하게 극한까지 압박해 들어가는 이러한 중력감은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에서 처음 느끼는 무게다.

그리고, 전작들의 슬픔과는 또다른 질감으로
한 없이 어둡고 차분하다.

전작과 같은 시적 알레고리 대신
자연 그대로를 묘사한다.



영화 마션이 생각났다.
실존으로서의 생존을 보여줬던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도 역설적으로 낙관적 공기를 만들어낸다.

글래스는 다르다. 그는 실존으로서의 생존이 아니다.
이 세상에 무한한 자유를 받은 채 던져진 존재가 아닌
어떤한 의무감과 책임감이 그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나를 규정하려는 모든 본질을 제거하고도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존재 목적을 규정하려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도 남아 있는 사실은,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뿐.
그렇기에 사르트르는 말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아들을 잃고 복수를 위해 생존하는 글래스의 삶에 대한 의지는
분명 아버지라는 본질이 더 강하게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복수를 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아버지의 처절한 생존은
족장 딸을 찾는 인디언 부족의 모습과 대구을 이루는 가운데
흐르는 강물과 높이 솟은 나무들,
그리고 약육강식의 동물들과 한데 어우러져서
대자연의 경외로움의 반사작용으로
더욱더 초라하고 고난하게 보였다.


찬란한 대자연
그리고 디카프리오의 고난
이 것들은 나의 생의 감각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Like us on Facebook

Flickr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