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2일 화요일

캐롤

캐롤

자신 내면의 욕망에 귀 기울일줄 아는 사랑.
성별과 신분을 극복하여 끝내 가지고야 만다.
★★★★



17일간 여행을 앞두고 있었다.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여행을 떠나는 기쁨만큼 날 괴롭게 만든 것은
극장에 걸려있는 많은 좋은 영화들이 여행을 갔다오면
극장에서 다 사라지게 될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출국 당일, 저녁 비행기 전에 억지로 짬을 내서 극장을 찾았다.
개봉한지 오래된 <캐롤>, 
그 주에 막 개봉했던 <사울의 아들>, <스포트라이트> 
이렇게 세 영화를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최근 개봉한 두 영화가 여행 후에도
여전히 극장에서 하고 있기를 바라면서
개봉한지 오래된 <캐롤>을 관람했다.

(그리고 다행이도 여행에서 돌아와서 지난 주 사울의 아들과 스포트라이트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캐롤>과 관련해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캐롤은 많이 닮았다.
두 영화를 읽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통적 요소 두가지가 있다.

하나, 동성애를 넘어서는 사랑의 보편성
둘, 두 인물간의 계층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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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보편성

둘은 첫 만남에서 끌림을 느낀다.
이유없는 강렬한 끌림... 맥락이 없는 것이 맥락이다.
모든 멜로영화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공기를 표현하고 있지만 무맥락의 맥락을 온전히 설득하는 것에 성공하는 작품은 흔치 않다. 그런데 <캐롤>은 완전히 날 설득한다.
이것이 동성애 코드 덕분인지... 멜로 서사에서 동성애라는 점이 초반 관계시작의 긴장을 표현하는데 있어 더 극적이고 집중도를 높히는 효과가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캐롤>은 독보적인 섬세함으로 두 인물의 감정과 떨림을 숨죽이고 지켜보게 만들면서 동성애 코드를 넘어선 보편적 사랑의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첫 만남은 좀 더 극적이고 파란 숏커트의 이미지만큼 감각적이다. 허나 마찬가지로 유난 떨지 않는다. 남녀가 처음 사랑에 빠지는 두근두근한 순간을 현미경을 드리대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이후 연애의 과정도 한없이 보편적이다. 두 젊은 여성은 어느 청춘의 사랑과 다를 바 없이 뜨겁게 교감했고 또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묵묵히 앞날을 향해 나아가는, 감동적인 성장서사까지 녹아있는 미덕을 보여준다.

그래서, 시대적 배경과 극중 인물의 연령의 요소와 함께 연관해서 바라봤을때 <캐롤>은 고전적이고 우아하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싱그럽고 격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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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층 차이

두 주인공의 계층차이(계급차이)는 <캐롤>과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두 작품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두 작품 모두 계층차이에 대한 묘사에 충분한 공을 드리고 있다.

<캐롤>의 경우
캐롤의 재력과 상류층적 기품이 두 주인공의 관계에 있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그로 인해 동성애 안에서도 남성적 롤과 여성적 롤의 구도가 보다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캐롤을 여성이 아닌 별거중인 상류층 중년남성으로 바꾸면 기품있는 부자 중년 남성이 멋모르는 가난한 이십대 여자를 꼬신 치정극의 외연을 가지게 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표면적 외연은 많은 생각거리를 주기도 했다.

<캐롤>에 대해서는 동네 허름한 호프집 구석에서 맥주 피쳐하나 놓고선 주저리주저리 시덥잖은 얘기를 새벽 동이 틀때 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욕망'을 키워드로. 나아가 '권력'관계까지. 관계에 있어 욕망의 주체와 객체을 만들어내는 권력은 오늘날 연애, 사랑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는 각자의 집에서 서로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는 장면을 통해 계층적 차이가 충돌과 갈등의 요소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촉망받는 예술가와 보람없이 유치원에서 일하고 집안일을 하는 구도로 그 계급이 표면화 된다. 이 커플의 갈등에 내재된 근본 씨앗은 결국 계층차이다. 동성애라는 사회적 금기때문에 고통받기 보단 다른 계층, 다른 가치관 때문에 서서히 지쳐가고 아파한다. 부딪히는 취향을 견디기 쉽지 않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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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영화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지가 궁금하다. 특히 남녀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실제 레즈비언 여성의 관람 후기도 궁금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하고 싶지만...
글쓰기가 귀찮다. 4월 이후로는 이렇게 글 쓸 시간도 없겠지.

이십대 때와는 다르게 글쓰기가 귀찮은, 글 쓸 시간도 없을 나에겐 수다상대가 필요하다.
수다상대가 없다면 결국 4캔에 만원 세계맥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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