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일 화요일

서양미술사 11 : 고대의 모방 - 고전주의 미학

18세기에 들어서는 바로크에 대한 반동으로 다시 고전주의가 강조되는데 이를 신고전주의라고 한다.

*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 1717 ~ 1768)
: 독일의 미술사가·고고학자. 1755년 로마에 가서 고대 미술을 연구하는 한편, 로마와 이탈리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유품을 모으고 유적을 조사하여, 1768년 빈에서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로부터 금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귀가 도중에 강도의 칼을 맞고 피살되었다. 그는 고대 미술의 역사를 처음으로 연구하여, 학문으로서의 기틀을 세움으로써 근대 미술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저서에 <그리스 예술 모방론> <고대 미술사> 등이 있다.


독일의 빙켈만이라는 평론가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자이며, 빙켈만의 이론은 고전주의적인 작품을 남긴 독일의 대표 문인인 괴테, 쉴러 등을 낳게한 토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빙켈만, 괴테, 쉴러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날 독일사람들이 가지는 교양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사실상 오늘날 독일적이다라고 하는 것은 빙켈만에서 괴테와 쉴러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그리스 미술은 고귀한 단숨함과 고요한 위대함이다.

- 빙켈만, 그리스 예술 모방론 -

고대부터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 하였는데, 옛날의 자연은 오늘날 우리가 의미하는 자연과는 다르다. 고대의 자연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의 신체'를 의미한다. 즉, 고대미술은 신체를 모방하는데 있는 것이었고 그리스인들은 그 신체를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닌 아름답게 이상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빙켈만은 이상적인 신체를 만들기 위해선 고대 그리스 미술을 모방해야한다고 주장했고 그 근거를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나타난 몸의 특징을 찾았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고대는 주로 로마이고 그리스라 해도 로마를 통해 걸러진 것인데 빙켈만은 원본으로서의 그리스를 제시하며 예술적인 이상으로 삼았다.

고대 그리스는 자연친화적, 인간친화적 땅으로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내 안의 자연, 즉 신체를 항상 자유롭게 하여 아름답고 건강하게 가꾸는 문화가 있었다. 빙켈만은 그들의 신체가 아름다웠기 때문에 좋은 취향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그리스는 민주주의 사회였기에 누구나 자유를 누리고 자기육체를 늘 배려하는 문화를 가졌던 고대 그리스에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고대에 대한 모방은 많은 르네상스화가들이 행하던 것이었다.  그러니깐 좋은 취향, 이상적 미는 고대 그리스에서 성취되었다는 빙켈만의 견해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미술사관인데, 고대 그리스로마 - 15세기 르네상스 - 17세기 고전주의 - 18세기 신고전주의 동안 항상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인들의 이상적인 육체를 표현하려 할 때, 방법은 결국 그 자취가 남아있는 고대그리스 조각을 모방하는 것. 빙켈만은 이러한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군상, 라오콘을 들었다.

* 헬레니즘(Hellenism)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제국건설 이후 고대 그리스의 뒤를 이어 나타난 문명

라오콘(Gruppo del Laocoonte) - Agesandro, Atenodoro, Polidoro, BC105 ~ BC50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 목마를 들여놨다간 이 도시(트로이)에 큰 재앙이 생길 것이다고 얘기를 하였다. 이것은 목마가 들어가는 가는 것은 신들의 뜻이었는데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었기 때문에 신들은 이를 벌하기 위해 바다뱀을 보냈고 라오콘과 그 자식들을 고통속에 죽게 하였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핏줄, 힘줄까지 묘사되어있지만, 전반적인 자세나 표정이 시끄럽지 않다. 잔잔하고 조용하다. 빙켈만은 이러한 절제된 우아함, 정신의 힘까지 포괄하는 아름다움이 그리스 예술의 위대함 이라고 말한다. (바로크 예술가였다면 굉장히 격정적이고 잔인하게 묘사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고전주의적 입장에서 예술가의 과제는 두 가지이다.
1. 자연을 생생하게 모방
2. 그것을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끌어오리는 것
이 두 과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윤곽(형태)"이다. 이를 통해서 바로크 시대에 약화되었던 고전주의적 미의식이 다시 부활하게 된 것이다.

.
.
.

신구논쟁
: 17세기 아카데미에서 바로크예술과 고전주의 예술를 비교하면서 예술적으로 당대인들이(르네상스 이후의 자기세대)과 고대인들(고대 그리스인) 중 누가 더 뛰어난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신구논쟁에 대한 빙켈만의 답은 조각은 그리스인들, 회화는 근대인들이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회화적 측면에서보면, 고대에는 아직 체계적인 원근법이 없었으며 색체에 대한 인식이 높지가 않아서 세련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고대에는 유화물감이 없었다.)

신구논쟁의 바탕에는 오랜 역사동안 지속된 '선'과 '색'에 대한 논쟁이 있다고 볼 수 있는다. 르네상스 이후 시대에서 예술의 가장 주도적인 장르가 회화였기에 결국 결론은 선도 중요하고 색도 중요하다는 타협이 이루어지었지만,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미학은 형의 미학으로서 조각적 효과를 지향하였고이고 바로크 미학은 회화적인 효과를 강조하고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이렇듯, 고전주의적 미학은 그리스의 인체, 그리스의 조각상을 모방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현대예술에서는 모방이란 예술가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근대의 예술, 특히 이러한 (신)고전주의에서는 이상적인 것의 모방이 창조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The High Priest Coresus Sacrificing Himself to Save Callirhoe - Fragonard, 1765

프라고나르는 로코코 화가이다. 로코코는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취향이다. 그러나 위 그림, "코레소스와 칼리로에"는 상당히 고전주의적인데, 그 이유는 아카데미 데뷔작이기 때문이다. 프라고나르같은 로로코 취향의 예술가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즉,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아카데미적인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 그림을 라오콘 조각과 비교해보면 거울상으로 똑같이 닮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레소스라는 신관은 칼리로에라는 여인을 몹시 사랑하였는데 칼리로에는 코레소스의 구애를 거절하였다. 이에 화가난 코레소스는 광기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복수를 간청였고 디오니소느는 칼레도니아 도시 전체, 모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저주가 풀리기 위해서는 칼리로에가 죽거나 이 여인 대신 다른 사람을 제물로 받쳐야 했다. 제물을 바쳐야 하는 날 결국 칼리로에가 죽음을 앞두게 되었는데, 코레소스는 칼리로에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하여 자기 자신을 찌르고 된다.

굉장히 비극적이고 격정적인 장면인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보면 차분하고 침착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고전주의의 효과이고 회화도 조각의 모델을 따랐다는 것을 잘 알수있다.

*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 ~ 1806)
: 18세기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이다. 그의 후기 로코코 양식은 주목할 만한 유려함, 풍부함, 그리고 쾌락주의로 두드러진다. 앙시앵 레짐 마지막 시대의 다작의 작가들 중 한 명으로 그의 인기있는 작품들 중에는 육체 관계의 분위기와 숨겨진 에로티시즘을 전달하는 풍속화 회화도 있다.




성 마테의 영감(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 Caravaggio, 1599-1600

카라바지오의 그림이다. 마테가 천사의 음성을 들으며 신적인 영감에 따라 복음서를 쓰는 장면이다. 복음석난 하느님의 말씀이다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조각의 또한 모방이다.
아래 조각상을 보자.

*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년 9월 29일 – 1610년 7월 18일)
: 이탈리아 밀라노출신의 화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인 카라바지오(Caravaggio)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극적인 조명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양식의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초기에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들로 인해 비난과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으나 점차 인정받게 되어 유명해진다. 로마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미술의 흐름을 급격히 변화시켰다.



샌달 끈을 묵는 헤르메스 신의 조각상이다.
헤르메스 신의 조각이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와 인간들 사이를 오가면서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인데, 사도 또한 하느님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헤르메스를 사도를 슬쩍 오버랩핑한 것으로 이 포맷을 사용하여 아주 효과적인 장면이 연출이 된 것이다.


Leonidas at Thermopylae - Jacques-Louis David, 1814

자크 루이 다비드의 테르모필렌 협곡의 레오니사스이다. 스파르타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의 침략에 맞서 어떤 좁은 협곡을 점령하고 수백명이 수십만에 맞서 며칠간 싸우다가 전멸을 했던 역사적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영화 <300>의 역사적 배경)


왼쪽의 그림은 어느 한 조각작품을 모델로 스케치 한 것인데 레오니다스왕의 포즈를 보면 그대로 가져다가 쓴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장면연출을 할 때 고전주의 예술가들은 흔히 저런 조각상 모델을 가져다가 쓰는 것이다.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연출된 포즈이기에 자기 스스로 포즈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닌 굉장한 미적 효과를 거뒀던 그리스 예술 포즈를 도입하고 있다.

*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 ~ 1825)
: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유력한 프랑스 화가로, 이 시대의 탁월한 화가로 평가 받는다. 1780년대 역사화에서 그의 지적인 특징은 로코코의 경박함에서 고전적인 엄숙함과 엄정함으로 취향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 변화는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시기의 도덕적 풍조와 조화를 이룬다. 이 시기에 그는 베네치아적인 색채 사용으로 유명한 앙피르 양식(Empire style)을 발전시켰다. 다비드는 많은 학생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는 19세기 프랑스 예술에서 (특히 아카데미적인 파리 살롱 회화에서)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The Entombment of Christ(그리스도의 매장) - Caravaggio, 1602-03

카라바지오의 작품이다. 예술의 팔이 툭 떨어져있는데, 이 것은 전투에서 죽은 용사를 무덤에 내려놓는 장면을 묘사한 조각작품을 모방한 것이다.
뒤에 손을 벌리며 연극적이 제스춰로 슬픔과 놀람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바로크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 안토니아 카노바(Antonio Canova, 1757 ~ 1822)는 신고전주의 조각가인데, 위 카르바지오 그림에서 손벌리며 놀라는 모습이 아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받는다는 강의 중 내용은 오류인듯 싶다.




이러한 고대의 모방은 고전주의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The Giant, also called The Colossus(거인) - Francisco de Goya,1814~1818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이다. 이 거인을 놓고 나폴레옹을 상징한다, 어두운 사탄을 상징한다 등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하다.(정답은 없다.)

*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고야는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8세기 스페인 회화의 대표자로 특히 고전적인 경향에서 떠나 인상파의 시초를 보인 스페인 근세의 천재 화가로 알려져 있다. 파괴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대담한 붓터치 등은 후세의 화가들, 특히 에두아르 마네와 파블로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야 그림의 거인 앉아 있는 포즈 및 분위기가 그대로 닮았있는 헬레니즘 시대의 휴식하는 복서라는 유명한 청동조각이다.  이런 것은 인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인용, 고대를 모방한다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표절은 아니다. 인용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고, 고대를 모방하였다해서 결코 그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 와서도 아직까지도 인용은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 지고 있으며 음악, 회화, 영화 등 많은 장르에서 여전히 인용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의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사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승리의 여신인 니케가 전함의 제일 앞에 서서 큰 날게를 펼치며 승리로 이끄는 장면을 연출한 조각상을 인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잘 이끌어 내고 있다.


* 사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
: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관장하는 여신인 니케를 묘사한 대리석상. 고대 그리스(헬레니즘 시대)의 대표적인 조각상 가운데 하나이다. 기원전 190년 로도스 섬의 주민들이 에게 해에서 일어난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모트라키 섬에 세운 조각상으로 추정되는데 기원전 220년에서 19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길이는 328cm이며, 머리와 양팔이 잘려진 채로 남아있다. 현재 프랑스 파리 시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댓글 1개:

Like us on Facebook

Flickr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