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9일 화요일

서양예술사 02 : 영원을 향하여 - 이집트 예술

세계가 문명화되면서 원시시대의 주술로서의 예술은 서서히 뒤로 물러나게 된다. 역사시대에 들어오면 예술은 종교적 숭배대상 혹은 미적인 감상대상이 된다.

이집트 예술은 철저히 종교적 기능에 종속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예술의 경우도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긴 했으나 다른 한편 아름다움을 미학적으로 평가하고 비평하고 이런 문화가 있었다.

예술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원리)가 있다.
1. 형(형태) - 스케치
2.

그림을 그린다고 할 때 먼저 스케치를 하고 그 다음 색칠을 한다. 즉, 형태와 색이 그림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인데 중세전까지는 '형'의 원리가 중심에 놓인다.

먼저 "비례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sky, 1892~1968, 미국 미술사학자)의 논문에서 핵식적인 내용만 간추려서 얘기해보자.

예술에 있어서 비례라는 것은 어떤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고 자연대상 모든 것에 해당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인체의 각 부분과 부분 사이의 수적인 비례관계를 비례론이라 얘기한다. 그것도 평소가 아니라 예술적 묘사대상이 되는 한에서.

즉, 팔등신 같은 개념이다. 이러한 비율은 역사마다 변하지만 어쨌든 형을 만들 때 보기좋게 만들기 위한 이상적인 인체의 비율을 정해놓는데 이를 캐논(canon)이라 한다. 캐논은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서는 인체의 비율 뿐만이 아니라 의미가 확장되어 예술 창작에 있어 주제, 소재, 기법 등을 총칭하게 된다.

비례에는 두가지가 있다.
1. 객관적 비례 -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실물의 비례. 자연주의적 묘사.
2. 제작적 비례 - 실물과는 다른 비례. 구성으로의 그림, 디자인, 양식화

객관적 비례를 따르는 대표적인 예술은 르네상스 예술이다. 보티첼리, 다빈치, 미켈란젤로 이들 작품을 보면 실물의 비례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전의 그리스 예술도 그러하다. 그리스 조각상을 보면 현질적 비율을 가지고 있다.
그에 반해 중세예술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 상반신이 너무 길거나 그렇다. 중세시대 예술가들은 실제 비율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현대회화에서도,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엉망진창이다. 제작적 비례를 따르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딱 일치하는 것이다.

이집트를 예술을 떠오려보자. 떠오르는 인물, 새모양 등등이 있다. 이집트 예술은 매우 양식화되어 있고 구성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인데, 가만히 살펴보면 또 인체의 실제비율과 맞아 떨어지게 되어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맞아 떨어진 예술,
이것이 이집트 예술이다.

생각해보자.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 인체가 있고 모델이 있고 모델을 그림으로 옮겨야 한다.
이 때 3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번째, 신체 비례를 정해 놓았다고 해보자. 아름다운 몸의 비례, 즉 캐논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어떤 동작을 취하느냐에 따라 인체의 길이가 바뀌기 떄문에 캐논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힘들다.

두번째는 대상을 묘사할 때 보는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단축법) 시점에 따라 평면에 그려야 하는 길이가 달라지므로 이런 상황에서는 캐논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번째는 작품을 만들어 놓았을 때 보는 위치에 따라 비율이 달라 보일 수 있다. 특히 큰 조각상이라면 아래에 올려다보면 실제와는 비율이 달라진다.

실제로 피디어스 등 그리스 예술가들은 세번째 지점을 신경을 써서 올려다 보았을 때 가장 캐논에 맞는 비율로 보이기 위해 머리를 크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미는 객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플라톤은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다워 보일 뿐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집트 예술가들은 이런 3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였는가?
간단하게도 그들은 그냥 무시하였다.

호루스신의 인도로 오시리스 앞에 선 세토스1세

자세가 몇 종류 안 된다. 캐논으로 만들어 놓기가 쉽다. 또한 단축법을 피하기 위해서 얼굴은 옆을 향하고 상체는 정면을, 하체를 옆을 향한다. 이를 정면성의 원리라고 한다. 즉 변수를 없애고 상수만을 묘사하려 한 것이다.

하렘합왕 무덤벽화

키, 다리를 벌린 크기, 팔길이 등등 모든 것이 모듈에 적용시켜 그렸다. 르네상스 예술가도 모듈에 의거해 그림을 그렸다. 다만 그 차이는 있는데 르네상스의 모듈은 창작의 원리라기 보다는 전사의 원리로 바깥의 대상을 베껴서 화판에 옮기는 것인데 이집트 예술의 모듈은 바깥을 볼 필요가 없이 그냥 정해서 만든 구성적 성격을 가진다.

모듈에 적용된 이집트 그림

그래서 이집트 예술은 예컨대 캐논을 인풋 시키면 아웃풋이 똑같이 나온다. 그래서 한 작품을 만드는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예술가가 함께 만들 수 있었다. 변화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누가 만들어도 똑같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 이집트 예술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그리스인들 만큼 그림을 못 그렸던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냥 그렇게 그리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실제 정면성의 원리가 파괴된 그림들도 이집트예술에서 나타나는데 그것은 중요하지 인물들에 대상일 때이다. 대신 파라오 상들은 어느 왕이 되었든 다 똑같이 보이는 것이다.

Kunstwollen: Kunst (Art) + wollen (Willingness) : 미술의 의지
Kunstkonnen: konnen (Can) : 미술의 능력

이집트는 능력의 문제라기보단 의지적 차이에서 그들의 미술형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집트 예술에 나타난 예술의지
1. 현실의 가변적 요소에 관심이 없었다. 상수만을 묘사
2. 3차원 공간의 환영은 의미가 없다. 현세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공간감이 없다.
3. 앞에서 일어나는 일만 묘사
4. 내세에서 살아갈 몸을 묘사. 현재의 특정 동작이 아니라 내세가서 되찾을 몸, 어떤 동작이라도 할 수 잠재성을 가진 몸을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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